아파트를 고를 때, 반려동물과 함께 살기 좋은 곳이라는 기준은 예전엔 딱히 고려하지 않았던 요소였다. 나도 처음엔 아파트 입주 조건이나 동네 인프라, 출퇴근 거리, 방 구조 같은 기준만 생각했지, 반려동물과의 생활을 깊이 고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아지를 입양하고부터는 아파트를 고를 때 시야가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중형견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이름은 봄이다. 봄이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고른 기준, 그리고 살아보며 느낀 점들을 정리해보면, 반려동물과 함께 살기 좋은 아파트는 단순히 ‘반려동물 가능’ 여부를 넘어서 훨씬 더 많은 요소들이 작용한다.
1. ‘반려동물 허용’이 아니라 ‘반려동물 환영’ 분위기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단순히 “반려동물 출입 가능”이 아니라, 단지 자체가 얼마나 반려동물에게 열려 있는지다. 이전에 살던 아파트는 반려동물 허용이긴 했지만, 실제로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개를 데리고 있으면 대놓고 인상을 쓰는 주민들도 있었고, 공동 공간에서 산책하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그러다보니 강아지를 데리고 외출하는 게 점점 스트레스가 됐다. 지금 아파트는 반려동물 키우는 세대가 꽤 많아서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아침저녁으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도 많고,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도 반려동물 관련 공지가 자주 올라온다. 단지 내에 ‘펫티켓’을 지키자는 캠페인도 종종 벌어지고, 쓰레기통 옆에 반려동물 배설물 처리용 봉투도 준비돼 있다. 이런 세심한 배려들이 쌓여서 마음이 참 편해졌다.
2. 산책 루트가 얼마나 잘 갖춰졌는지
강아지를 키우다 보면 하루 일과 중 가장 큰 부분이 산책이다. 봄이는 하루 두 번, 한 번에 30분 이상은 걸어야 스트레스를 풀고 에너지를 소모할 수 있다. 그래서 단지를 고를 때 단지 내외로 산책 루트가 얼마나 잘 조성돼 있는지가 정말 중요했다. 지금 사는 아파트는 단지 중앙에 넓은 산책로가 있고, 양쪽 끝에는 작은 공원도 있다. 공원은 큰 도로에서 살짝 떨어진 구조라 자동차 소음도 거의 없고, 나무도 많아서 여름엔 그늘이 충분하다. 비 오는 날에는 지하주차장을 통해 나가면 단지 내를 우산 없이도 한 바퀴 돌 수 있는 구조여서 편리하다. 이전 아파트에서는 횡단보도를 건너야만 산책 가능한 공원이 있었는데, 이건 정말 큰 차이다. 강아지한테도, 사람한테도 단지 내에서 안전하게 산책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장점이다.
3. 엘리베이터 구조와 배려
강아지와 함께 살다 보면, 엘리베이터에서의 상황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봄이는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다가가 인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혼자 탄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 탑승하면 순간적으로 제어하기가 어렵다. 지금 아파트는 반려동물과 동승을 알리는 스티커를 엘리베이터에 부착할 수 있게 돼 있다. 물론 강제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반려인들이 자발적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승강기 내에서의 불편이나 오해가 훨씬 줄어들었다. 어떤 아파트는 반려동물 전용 승강기를 마련해둔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시설이 있다면 정말 큰 장점일 거라 생각한다. 또 한 가지, 엘리베이터 앞 공간이 넓어서 다른 사람과 겹쳤을 때도 어느 정도 거리 유지를 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런 구조적 여유가 은근히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4. 층간소음 구조와 바닥 마감
반려동물을 키우다 보면 소리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봄이는 사람이 복도에서 걷는 소리나 엘리베이터 도착음에도 반응하는데, 이게 심하면 짖음으로 이어진다. 아파트 구조 자체가 소음 차단이 잘 되어 있으면 이런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지금 사는 아파트는 복도식이 아니라 계단식이고, 집 안에도 방음이 잘 되어 있어서 복도에서 누가 걸어도 실내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마루 재질도 미끄럽지 않아 강아지가 다리를 헛디디지 않아서 관절에도 좋다. 이전 아파트는 광폭 마루라서 자꾸 미끄러지고, 뛰다 넘어진 적도 있었다. 그 이후로 바닥 마감재도 중요하게 보게 됐다. 만약 처음부터 선택할 수 있다면 미끄럼 방지 기능이 있는 마루나 매트를 고려하는 게 좋다.
5. 반려동물 관련 서비스 유무
지금 아파트는 단지 근처에 동물병원, 애견 미용실, 애견 카페, 반려동물 용품점이 다 몰려 있어서 굉장히 편하다. 특히 동물병원이 가까운 건 아주 큰 장점이다. 한 번은 봄이가 밤에 갑자기 토를 심하게 해서 급히 병원을 찾은 적이 있었는데, 걸어서 5분 거리에 24시 동물병원이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
단지 내에는 아직 펫케어 시설이 있진 않지만, 일부 신축 아파트 단지에는 애견 놀이터, 반려동물 목욕장, 전용 배변장 같은 게 따로 마련된 곳도 있다. 그런 곳이라면 정말 반려인을 위한 맞춤 설계라고 할 수 있다. 나중에 이사 계획이 생긴다면 이런 시설 유무도 반드시 확인해볼 생각이다.
6. 이웃 간의 반려문화 인식
마지막으로,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이웃 간의 분위기가 좋지 않으면 불편함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금 사는 곳은 커뮤니티 앱을 통해 반려동물 관련 소통이 자주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강아지가 짖는 소리가 너무 심할 때는 정중하게 알림이 올라오고, 사과와 이해가 자연스럽게 오간다. 또, 강아지를 잃어버렸을 때도 커뮤니티를 통해 바로 공유되고 함께 찾아주는 분위기다. 이런 문화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입주민 대부분이 반려동물에 대한 이해가 있고, 아파트 측에서도 이를 지원하려는 태도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지금 이 아파트에서 반려견과 살면서 가장 큰 장점은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삶’이다. 내가 내 반려견과 함께 지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처럼 여겨지고, 그 자체로 존중받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앞으로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점점 늘어날수록, 단순히 ‘허용’이 아니라 ‘환영’의 태도를 가진 아파트가 많아졌으면 한다. 반려인에게도, 반려동물에게도, 그리고 비반려인에게도 모두가 편안하게 공존할 수 있는 그런 공간. 나의 다음 이사에서도 아마 가장 먼저 살펴보게 될 조건일 것이다.